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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How the Early Church Viewed Martyrs

by pastor_kim 2019. 12. 6.

How the Early Church Viewed Martyrs:
Christians held a theology of martyrdom that gave them courage to endure
William G. Bix
ChristianityToday.com

The early church's theology of martyrdom was born not in synods or councils, but in sunlit, blood-drenched coliseums and catacombs, dark and still as death. The word martyr means "witness" and is used as such throughout the New Testament. However, as the Roman Empire became increasingly hostile toward Christianity, the distinctions between witnessing and suffering became blurred and finally nonexistent.

 

In the second century, then, martyr became a technical term for a person who had died for Christ, while confessor was defined as one who proclaimed Christ's lordship at trial but did not suffer the death penalty. A passage from Eusebius describes the survivors of the persecution in Lyons (in 177 in what is today France): "They were also so zealous in their imitation of Christ … that, though they had attained honor, and had borne witness, not once or twice, but many times—having been brought back to prison from the wild beasts, covered with burns and scars and wounds—yet they did not proclaim ...

 

 

초대교회의 ‘순교신학’은 이런 저런 종교회의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햇살 아래 피로 흥건한 콜로세움과 죽음처럼 어둡고 고요한 카타콤에서 태어났다. 마르투스(martyr, 현재 ‘순교자’를 의미하는 이 말의 그리스어 원뜻은 ‘증인’이다/편주)라는 단어는 ‘증인’을 의미했으며, 신약성경 전반에 걸쳐 그런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기독교에 대한 로마제국의 태도가 점점 더 적대적으로 변함에 따라 ‘증언하는 것’과 ‘고난받은 것’ 사이의 구분은 희미해졌고, 마침내 사라져버렸다.

이후, 2세기경에는 ‘마르투스’는 그리스도를 위해 죽은 사람을 지칭하는 전문용어가 되었다. 한편 ‘고백자’(confessor)는 재판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선언했지만 사형을 언도받지 않은 사람을 일컫는 말로 정의되었다. 유세비우스는 ‘리용의 박해’(177년 프랑스에서 일어난)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을 너무도 사모했기에, 물론 명예를 얻기는 했지만,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증인이 되었다. 화상과 상처로 뒤덮인 채 투옥을 당하고 야수들에게 시달리기까지 했지만, 그럼에도 스스로 마르투스라 칭하지 않았고 우리가 자신을 그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편지나 대화를 통해 그들을 마르투스라고 말하면, 그들은 우리를 준엄하게 꾸짖었다. 그들은 마르투스는 이미 죽은 사람들임을 일깨워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고백을 받아들일 만하다고 여긴 사람들, 죽음으로써 자신의 고백을 봉인한 사람들은 마르투스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보잘것없고 비천한 고백자들이다.’

순교신학의 뿌리


순교에 관한 사상은 교회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라 마카베오 혁명(주전 173-164) 때 나타난 경건한 유대인들의 수동적 저항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안티오쿠스 4세나 폭군 셀레오쿠스는 할례와 같은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의 종교 관습을 금지하는 것을 포함, 여러 가지 야만적 행동을 함으로써 혁명에 불을 붙였다. 돼지고기를 먹고 율법을 어기느니 차라리 고문과 죽음을 택했던 율법학자 엘르아살(Eleazar, 마카베오서 하편 6장)과 같이 종교적 신념에 충실한 유대인들의 이야기는 많다. 그로부터 200년 후, 주후 70년의 유대전쟁에서는 유대인 수천 명이 로마의 우상을 섬기느니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자가 되었다. 이 고결한 전통이 교회 순교신학의 형성에 기여했다.

무장 저항은 왜 안 될까


하지만 마카베오 시대에는 또한 유다 마카베우스(Judas Maccabeus) 같은 혁명가의 이야기도 있다.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유다 마카베우스 같은 무장 혁명가들보다는 엘르아살 같은 수동적 저항가를 따르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님 그분만 보면 된다. 교회는 순교를 예수님을 본받는 것으로 이해했다. 예수님은 재판과 사형집행 현장에서 비폭력의 본을 보이셨으며, 제자들에게 당신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므로 싸워서는 안 된다고 선포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니케아 회의 이전 시대 교회의 영혼들에게 깊게 새겨졌다.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눅 6:29).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마 5:39).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마 5:10).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요 15:20).

바울과 신약의 다른 저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을 위해 고통을 겪으면서도 대항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고 발전시켰다. 믿는 자들의 무기는 철이나 청동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경건함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엡 6:13 이하).

기독교 첫 순교자 스데반은 자신을 고문하는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며 예수님과 같은 죽음을 맞이했다. 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스데반을 “완벽한 순교자”라고 불렀으며, 그는 다른 모든 순교자들이 뒤를 따르는 모범이 되었다.

위대한 싸움


심판과 고문에 대한 순교자의 비폭력적인 반응은 복종이나 체념과는 다른 것이다. 초대교회에 순교 행위는 지옥의 권세에 대항하는 서사적인 영적 싸움이었다. 한 예로 유스티니아누스(Justine)는 황제 안토니우스 피우스에게 재판도 없이 그리스도인들을 처벌한 것은 “사탄의 선동에 의한 것”이라고 비난하는 변증적인 글을 썼다.

검투나 운동 시합에 대한 윤리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전투 용어들을 사용해 사탄의 영적 전투를 묘사했다. 유세비우스는 과장해서 “신앙 전사들이 훈련과 불굴의 용기로 사탄에게서 얻은 승리의 트로피들이 그들의 머리 위에 놓여 있다”고 기록했다.

이러한 이미지는, 조금은 아이러니하게, 영적 불의에 대항해 싸우는 여성과 아이들을 묘사하는 데 쓰였다. 죽음을 앞두고 페르페투아(Perpetua)는 옥중일기에 천국의 심판관인 예수님 앞에서 이집트인 검투사를 물리치는 환상을 보았다고 기록했다. 악의 상징을 정복하고 나서 그녀는 사과를 상으로 받았는데, 그것은 카르타고의 아폴론 경기에서 주어지는 상이었다. 또 다른 순교자인 블란디나(Blandina)는 “작고 약하고 멸시받았지만, 위대한 무적의 승리자 그리스도를 힘입어 많은 경기에서 싸움을 통해 적을 물리치고 순결의 면류관을 얻었다”고 묘사되었다.

이 생생한 전투의 은유는 블란디나와 페르페투아에 앞서 네로 황제의 시대에 박해로 죽었던 또 다른 순교자를 떠올리게 한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4-25).

최후의 동반자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전쟁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람페(G. W. Lampe)가 지적하듯이, 교회는 신자들의 고통과 죽음을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장사되는 것의 구체적이고 문자적인 실현, 모든 회심자들의 세례를 상징적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이해했다(롬 6:3).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는 로마에서 순교하면서 자신은 “그리스도에게 이르기”를 바라고 “나의 하나님, 그리스도의 수난을 따르는” 자가 되는 것이 소망이므로 자신의 죽음을 막기 위해 어떤 행동도 취하지 말라고 교회에 당부했다.

신약성경은 이러한 주제와 관련해 초대교회에 수많은 설명을 제공했다.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것은 예수님을 박해하는 것이다(행 9:5).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처럼 고난당해야 한다(요 15:20).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릴 것이다(갈 2:20).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3).

순교자들은 예수님을 드러낼 뿐 아니라, 고통을 당하는 동안 신비로운 방식으로 예수님이 실제로 그들 안에 임재하심을 깨달았다. 블란디나가 죽을 때(177년 리용에서) “그들은 그 자매를 대신해 십자가에 매달린 그분을 보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또 비엔나 인근에서 수난을 당한 한 성인에 관해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의 처참한 육신은 그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에 대한 증거였다. 온통 상처투성이에 골절로 수축되었고, 사람의 형태를 잃었다. 그 안에서 그리스도는 수난을 겪으며 적을 패배시키고 놀라운 기적을 성취했다.”

교회는 순교자의 힘과 증언의 원천이 성령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오직 성령의 역사만이 적대적 권위 앞에서 그토록 강력한 선언을 할 수 있다. 순교자들은 예수님의 약속에 의지했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막 13:11).

박해에 맞서 믿음을 고백한 이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계시와 언약의 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리용의 순교자들의 대변인이었던 베티우스(Vettius)는 “자신 안에 중재자, 곧 (누가복음 1장 67절에 성령 충만을 받은 선지자로 나오는) 사가랴의 영”을 지녔던 것으로 묘사된다.

성령은 자유롭게 내려와서 세례를 받은 자에게나 받지 않은 자에게나, 적절한 꿈과 계시를 주었다. 한 예로, 폴리카르포스(Polycarp, 155년에 순교한 서머나의 주교)는 자신의 베개가 불타는 것을 보고, 그 환상이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 예언적 환상은 그대로 실현되었다.

최후의 영광


재판과 고문을 받는 동안 주어지는 영감의 확신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은 그 같은 조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배교의 위험이었다. 그래서 <헤르마스의 목자>(Shepard of Hermas, 2세기경 교부 문서/편주)는 주님을 부정하는 종은 사탄이라고 명시했다. 키프로스인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배교는 성령에 대한 모독과 같은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것은 매우 큰 죄이기 때문에 누가 그 잘못을 저질렀는지 그들 스스로 안다. 때문에 주님과 우리의 심판관은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라고 말씀하신다.”

순교자들과 고백자들은 변절하지 않았고, 또 예언과 환상의 능력을 가졌기에 교회에서 크게 존중받았다. 그들의 영적 권위는 실제로 주교와 비슷했다. 폭스(R. L. Fox)가 지적하듯이, 성령은 그들에게 ‘묶고 푸는 것’을 가능하게 했으며, 이단과 정통을 분별하고, 죄를 사하는 능력을 주었다. 한 예로, 카르타고의 사투루스(Saturus of Carthage)는 자신과 페르페투아가 주교와 장로들 사이에 일어난 논쟁의 중재자가 되기 위해 순교할 것이라는 계시를 보았다.

초대교회는 또한 순교자를 최고의 중재자로 보았다. 요한의 첫 번째 편지는 중재의 힘을 언급하고 있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요일 5:16).


순교자들이 살아생전 기도로 이룬 업적들은 전설처럼 수없이 회자되었다. 따라서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죽음 이후에 이 기도의 전사들이 천국의 법정에서 중재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로마 카타콤의 익숙한 비문 가운데 나타난다. “바울과 베드로가 승리자를 위해 기도하리라.”

영적 순결에 대한 상은 일반적인 그리스도인이 받을 상보다 60배나 더 크지만, 순교자가 받을 상은 그보다 100배 더 크다고 전해진다. 초대교회의 구원관 중심에 그리스도가 있다면, 순교자의 죽음은 세례 이후에 지은 모든 죄를 다 지울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사르디스의 멜리투스(Melito of Sardis)는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세례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순교자에 관한 글에서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 역시 이를 반복했다. “피 흘림은 천국의 열쇠다.”

순교의 미덕에 대한 믿음은 “자원하는” 현상을 초래했다.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적극적으로 박해와 죽음을 추구했다. 한 예로, 로마 총독의 법정은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죽기를 바란다”고 외치는 에우플루스라는 그리스도인 때문에 중단되기도 했다. 그의 요구는 수용되었다. 초대교회는 자원적인 순교에 찬성하지 않았으며, 실제로 오리게네스(Origen)와 클레멘티누스(Clement)는 그런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경고했다. 마태복음을 보면, 박해가 다가왔을 때 예수님 자신도 피할 것을 권유받았다. 따라서 죽기를 자원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사랑에서 숭배로


순교자에 대한 초대교회의 정서는 사랑에서 존경으로, 다시 숭배로 옮겨갔다. 폴리카르포스의 순교를 기록한 저자는 이렇게 적었다. “하나님의 자녀인 그들을 우리는 흠모한다. 주님의 제자이자 본을 따른 순교자인 그들에게 존경을 바친다. 우리의 왕이자 스승을 향해 그들이 바친 충성심은 존경을 받기에 합당하다.”

사람들은 매년 ‘천국의 생일’(곧, 죽음 기념일)을 기념함으로써 순교자들을 기렸다. 기념 예배는 기도와 봉헌, 성찬, 그리고 순교자의 고난과 죽음에 관한 기록을 읽는 형식으로 고인의 무덤에서 열렸다. 이런 예배는 기독교의 유대적 뿌리와는 완전히 상반된 것인데, 모세의 율법을 따르는 유대주의에서 무덤은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3세기의 시리아 교회는 교인들에게 불결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말고 무덤에서 만날 것을 조언했다.

언제부터 순교자에 대한 존경심이 순교자의 유해로 옮겨졌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2세기에 쓰인 폴리카르포스의 순교에 관한 기록에는 서머나의 교회는 성자의 유골을 “보석보다 귀하고 황금보다 좋은 것”으로 여긴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안디옥의 교인들은 이그나티우스의 유골를 대단히 존중했으며, 키프로스인들의 피와 옷은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순교자의 유골을 신성시한 것은 많은 문제를 야기했지만, 순교자의 신실한 죽음을 예우하고자 하는 교회의 욕구를 약화시키지는 못했다. 유골에 대한 강조는 제7차 공의회(787년 니케아에서 열린)가 새로운 교회를 봉헌하기 전에 반드시 제단에 순교자의 유골을 놓아야 한다고 규정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순교자 숭배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어떤 잡음도 우리로 하여금 모든 교회가 이 용감한 영혼들에 지고 있는 영적인 빚에 눈감도록 할 수는 없다. 이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어린이들은 고문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심으로 세상을 향해 카이사르가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임을 선포한다. 요한계시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계 12:11).

2009년 4월 크리스챠니티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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